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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내려진 일본인 ‘사이또’의 「교육 시책」과 20세기 말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가 쓴 책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의 내용은 맥을 같이한다?
관리자  2003-04-06 13:58:27  |  조회 : 2,473

필자는 우연히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라는 사람이 쓴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책을 읽으면서 20세기 초,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서 집요하고도 호시탐탐 노리던 조선총독 사이또의 「교육시책」과 너무도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보고 보던 책을 집어 던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지명도가 높은 지식인들조차도 “우리에게 주는 보약이다” 운운하면서 그 책을 많이 읽혀지도록 역할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사이또라는 사람은 1919년부터 1926까지 3대와 5대 조선 총독을 지낸 사람이다. 그는 일본인이 조선인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일본은 1919년 3월 1일 3․1 항쟁의 거센 민족적인 저항을 겪은 후, 형식적이나마 무단정치 대신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나왔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새로 부임한 사이또 총독은 교활한 교육시책을 내걸고 조선정신 말살을 기도하면서 조선사 편찬위원회(조편위)의 설치를 서둘렀고, 1922년 12월 훈령 제 64호에 의거 ‘조편위’가 구성되었으며 여기에는 한국인 이병도․이능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일제의 흉행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우리의 수많은 사서(史書)를 약탈하고 불태운 짓이다. 그들은 이것도 모자라 역사를 왜곡․날조하고 연구기관을 강제로 해체시키는가 하면 우리는 사대성․당파성에 찌든 민족이라고 비하시키는데 어용사기(御用史記)를 총동원하였다.
  징병․징용․정신대로 청장년을 끌어가고, 공출의 미명 아래 물자를 빼앗고, 신사참배․창씨개명․한글과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여 민족정신을 짓밟은 일제가 저지른 역사왜곡과 날조 그리고 비하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이런짓을 서슴지 않는 일제의 행위가 얼마나 치밀하고 간악했는지, 우리는 지금도 그들의 만행에 분노와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일제가 조선을 강제 병합한 후 가장 먼저 서두른 것은 약탈하는 짓이었다. 그들은 1910년 11월에 설치한 취조국을 통해 전국의 각도․군 경찰과 헌병을 총동원하여 조선의 사서를 비롯하여 전통․문화․예술․인물․전기․열전․충의록․무용전(武勇傳)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뒤져 압수하기 시작했다.

  각종 서적의 압수는 서울 종로 일대의 서점은 말할 것도 없고 각향 각처의 향교, 서원, 양반, 세도가의 집 등에서 빠지지 않고 행해졌다. 총독부가 눈에 불을 켜고 찾은 서적은 단군 관계 조선 고사서를 비롯하여 각종 고사서가 중심이었다.

이처럼 일본인들은 조선의 일과 역사를 말살하는데 혈안이 되었던 것인데, 일본인이 가지고 있던 '역사에 대한 열등의식'때문이다. 역사의 중요성에 대하여, 신라 화랑제도를 시행한 바 있는 24대 진흥왕은 “욕흥방국 수선풍월도(欲興邦國 須先風月道) 즉, 나라를 흥하게 할려면 먼저 풍월도를 일으켜라”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풍월도란 바람 달, 박달, 배달의 뜻으로 과거 역사적으로 찬란했던 배달국의 정신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배달국의 정신은 14대 치우천왕 이를테면 중국 초대 황제 헌원을 제압했던 역사와 민족의 자긍심을 알도록 해야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단군세기의 저자 행촌 이암선생(1297~1334)은 “나라는 형상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혼을 저버리고서 어찌 형상을 보존할 수 있겠는가” 독립 운동가이면서 황성신문 주필이었던 단재 신채호(1830~1936)선생은 “역사는 애국심의 원천이다. 역사를 버리고서는 민족이 없고 민족을 버리고서는 역사가 없다.” 독립운동가이면서 임정대통령을 역임한 백암 박은식(1859~1926)선생은 “우리나라는 4300년의 역사를 가진 군자의 나라로써 일본인들에게 문화를 전해주었고, 일본이 일찍이 스승의 나라로 섬겼으나 지금은 일본의 노예로 전락했다, 나라는 망하게 할 수 있으나 역사는 없앨 수 없으니 역사는 민족의 혼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외국의 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탈리아의 정치 지도자 마치니(1805~1872)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재상인 메테르니히(1773~1859)가 “이탈리아는 지리상의 이름뿐이다” 하면서 이탈리아를 침략하려 하자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에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인임을 잊지 말자.”는 역사 교육을 통하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 줌으로써 야심에 찬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을 양성할 수 있었으며 메테르니히의 침략기도를 포기하게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역사 교육은 그 나라의 흥망성회를 가름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이또의 교육시책과 이케하라 마모루의 책의 목차 내용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사이또의 교육시책
①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역사․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민족혼․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②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과 악행 등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조선의 청소년들이 그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고,
③ 그 결과 조선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니 그 때에 일본 서적․일본 인물․일본 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요인인 것이다.


  이케하라 마모루의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책 목차 내용
제1장 염치없는 한국인들
   ① 경제는 1만 달러, 의식은 1백 달러 ② 온상속에서만 자라는 ‘떡잎’ ③ “내 앞에 가는     꼴 절대 못 봐” ④ 입으로만 찾는 의리 ⑤ 새벽을 열지 못하는 장닭 ⑥ 망나니로 키우     는 가정교육 ⑦ 그 작은 나사못 하나 ⑧ 박세리와 박찬호 ⑨ 길이 막혀서...... ⑩ 한번     쥐면 절대 안놓지, 마이크

제2장 무법천지 아, 대한민국
   ① ‘이상한 나라’ 한국 ② 한국 골퍼는 출입 금지 ③ 선천성 질서의식 결핍증? ④ 재수     없어 걸린 사람들 ⑤ 총알 택시의 악몽 ⑥ 아파트의 새벽 방송 ⑦ 총체적 무질서 아,      대한민국 ⑧ 교통 법규부터 지키시오, 아멘 ⑨ ‘폭탄주’의 나라

제3장 맞아죽을 각오로 쓴 한국․한국인 비판
   ① 전과자가 떵떵거리는 나라? ② 선천성 과대망상 증후군 ③ IMF - 마침내 올 것이     왔다 ④ 누가 철야하라고 했나? ⑤ 바가지와 ‘웰컴 투 코리아’ ⑥ 다이옥신 소동 ⑦ 공     해에도 순서가 있다 ⑧ 님비와 남비 ⑨ 한국 기자는 모두 애국자(?)

제4장 한국의 미래는 과연 있는가
   ① 부실공사 추방 원년 ② 차라리 독도를 폭파해 버리자 ③‘혼네’와 ‘다테마에’사이 ④      머리가 너무 좋아 탈이야 ⑤ 대한민국 훈장 ⑥ 30년 뒤에 수입해도 늦지 않다 ⑦ 일본     방송인지, 한국 방송인지...... ⑧ 한국과 일본은 100년 차이? ⑨ 국민의 정부에 바라는 4     가지 ⑩ 그래도 한국의 미래가 밝은 이유

  우리는 여기서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 씨가 지적한 내용을 주목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내용 하나 하나가 맞는 말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꼭 일본인이 자조적(自嘲的)이고 비하(卑下)하도록 한국인에게 충고하는 내용에 그토록 반겨야 하는가를 놓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만든 책들 중에서도 동방예의지국답게 문화 선진국 국민답게 고칠 점을 지적하는 좋은 책들이 많이 있다. 문제는 일본인이 지적한 이러한 내용을 보고 우리들이 자조적이고 비하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비근한 예로 2002년도 한․일 월드컵에서 일본인들은 거리 응원을 하지 못했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2천3백만이라는 인파가 몰려 거리 응원을 펼침으로써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여섯시간에서 여덟 시간씩을 기다려서 시청 앞 광화문 광장을 메운 젊은이들은 누구하나 불미스러운 일 없이 서로를 위하는 아름다운 정신으로 멋진 응원전을 펼쳤으며 그 결과 우리 태극 전사들은 세계 4강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2천3백만 거리 응원을 주도한 ‘붉은 악마’가 응원 깃발로 사용한 치우천왕(蚩尤天王)의 용안(龍顔)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치우천왕은 배달국 18명의 환웅중에서 14번째 환웅이다. 치우천왕은 당시 중국의 초대 황제로 일컬어지는 헌원과 탁록(涿鹿)전투에서 황제 헌원을 무참히 무찔렀던 동양의 군신(軍神)이었다. 이는 환단고기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환단고기라는 책의 신빙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치우가 고대 한민족의 강력한 임금이었고 중국에서조차 동양의 군신으로 여겨졌던 아득한 신화시대의 영웅이었다는 사실을 젊은 신세대들이 인정하고 그 깃발을 통해서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을 신들리게 했던, 우리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잠재력을 분출하게 만들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치우천왕의 용안은 신라시대 기와의 도깨비 얼굴로 계승된 적이 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신세대들이 붉은 악마라는 응원 깃발로 사용함으로써 높은 문화적 잠재력을 분출케 하고 있는 것이다.(조선일보 2002. 6. 28. 鄭在書,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글을 일부 인용)

  따라서 우리는 고대 상고사에 나와있는 우리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자랑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교육함으로써 스스로가 자조적이고 비하적인 면을 탈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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