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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오계(世俗五戒)는 원광법사가 화랑도에게 계율로 삼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관리자  2003-04-06 14:00:32  |  조회 : 4,262

우리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배우기를 “신라가 삼국통일 하는데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은 김유신 장군을 위시한 화랑도의 역할이 컸고, 그 바탕에는 원광법사의 세속오계가 있었다.”라고 배웠다.

과연 세속오계(일명 화랑오계)는 원광법사가 만들어낸 계율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이 세속오계와 똑같은 내용 즉 사군이충(事君以忠 : 충으로써 임금을 섬긴다), 사친이효(事親以孝 : 효로써 부모를 섬긴다), 교우이신(交友以信 : 믿음으로써 벗을 사귄다), 임전무퇴(臨戰無退 : 전장에 임해서는 물러서지 않는다), 살생유택(殺生有擇 : 살생은 가려서 하며 함부로 살생을 하지 않는다)의 忠(충)․孝(효)․信(신)․勇(용)․仁(인)이라는 다섯가지의 계율은 배달국 시대에도 있었고 고조선 시대에도 있었으며 고구려에도 있었다.

이를테면 배달국 시대에는 ‘도의원리(道義原理)’라는 이름으로 고조선 시대에는 ‘오상지도(五常之道)’로, 그리고 고구려에서는 고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대부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에 오상지도라는 이름으로 존재했었다. 다시 말하면, 원광법사라는 승려가 마침 화랑도 두 사람이 찾아와서 “화랑도로서 지켜야 할 계율을 주십시오”라고 부탁하자 원광법사는 배달국 시대와 고조선 시대에 군사사상(군인들이 지녀야 할 굳은 정신)으로 작용되어 오던 다섯가지 계율을 화랑도인 ‘귀산(貴山)’과 ‘추항(秋項)’에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잘 알지 못하면 “그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배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선조들의 사상이나 철학도 당연히 굴절된 상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가지게 된다.   이와 연결해서 우리나라가 많은 외침을 받았고 그 때마다 슬기롭게 물리쳐 왔지만 우리가 여기서 알고 넘어가야 될 것은 931회라는 외침(유봉영 교수 논문)중에 고려시대 후기로부터 조선왕조 시대에까지 992년간 무려 777회의 외침이 있었던 반면 삼국시대 이전 3268년간은 불과 154회의 외침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중에 하나는 고려후기에 공자의 삼강오륜 사상이 들어오면서 우리의 군사사상에도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율곡 이이 선생이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가 결과적으로 귀양을 가게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데 십만양병설을 묵살하기까지의 사상적 배경에는 세속오계가 삼강오륜으로 바뀌면서 사상적 틀이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즉 ‘삼강오륜’에서 말하는 오륜은 부자유친(父子有親 : 아버지와 아들간의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 군신유의(君臣有義 : 임금과 신하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 부부유별(夫婦有別 : 부부사이에는 엄격히 지켜야 할 인륜의 구분이 있어야 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 : 어른과 아이사이에는 순서가 있어야 한다),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과 친구 사이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세속오계에서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이 제외되고 대신에 ‘부부유별(夫婦有別)’과 ‘장유유서(長幼有序)’가 포함됨으로써 국가안보 사상의 퇴보를 가져왔으며 대신 국가보다는 가정을 중요시하는 풍조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 또한 역사의식에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큰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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