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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인 이호준의 가족사랑(16.4.13)
 관리자  04-13 | VIEW : 790
이호준.jpg (65.1 KB), Down : 12



“오늘이 제겐 가장 완벽한 하루입니다.”

NC 다이노스 베테랑 타자 이호준(사진=알렉스 김)

전 원래 투수였습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1995년까지 전 해태 타이거즈의 투수였어요. 투수로 나온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요? 투수 성적 역시 찾을 수 없다고요? 그럴 겁니다. 제가 1군 마운드에 선 건 1994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까요. 그해 8경기에 등판해 12.1이닝을 던졌죠. 성적은 무승 무패 평균자책 10.22.

인정합니다. 투수로선 형편없었어요. 해태도 그걸 알았는지 주로 크게 지는 경기에 절 패전투수로 올렸어요. 이미 승부가 기울어진 상황에, 관중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걸 보면서 투구한다는 건 정말 김빠지는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흥이 나지 않았어요. 더 흥이 나지 않던 건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당시 해태엔 기라성 같은 선배 투수가 많았습니다. 이강철, 조계현, 문희수 선배가 선발, 송유석 선배가 셋업맨, 선동열 선배가 마무리를 맡고 있었어요. 이런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1군 주력 투수가 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패전 마무리라도 1군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감사한 일일지 몰랐어요. 하지만, 그때 전 19살의 어린아이였습니다. ‘나도 선발 좀 시켜주지’하는 불만 속에서 살았어요. 불만이 커지면 숙소를 도망쳐 나가기도 했죠.

정직하게 말한다면 전 투수보단 타자가 더 어울리는 선수였습니다. 저 역시 해태 입단 때부터 타자를 희망했어요. 로진백을 만지작거리는 것보단 손목 밴드를 차고, 눈 밑에 패드를 붙이는 게 더 좋았어요. 팔이 아파 투수론 ‘가망 없다’는 소릴 들었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죠. 왜냐? 타자로 전향할 수 있었으니까요.

타석에 처음 섰을 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전 그때 알았어요. ‘타석에 섰을 때의 이호준과 마운드 위에서의 이호준이 다르다’는 걸요. 그만큼 타석이 제겐 훨씬 더 편안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타자로 승승장구했느냐? 천만에요. 고생 좀 했습니다. 그즈음 주위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넌 실력은 타고났는데 노력을 안 한다’는 거였어요. 네, 어린 나이였습니다. 호기심도 많고, 야구 아닌 다른 일도 해보고 싶던 나이였어요. 야구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때였죠. 그러다 거짓말처럼 철이 들었습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2001년 결혼하고, 아내가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귀엽고, 깜찍한 아이였죠. 하지만, 전 그때도 철없는 아빠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보다 연봉이 몇 배는 많은 선배가 제게 “아기 분유로 뭘 먹이냐”고 묻더군요. 그때 제 연봉이 낮은 때라, 제일 싼 분유를 먹이고 있었어요. 일회용 기저귀도 제겐 사치였습니다. 아파트 전세 대출금 갚느라 힘들었던 시절이었거든요.

집으로 돌아와 아내한테 선배 집에서 쓴다는 분유를 이야기했어요. 아내가 그러더군요. “그 분유가 우리 아기가 먹는 분유보다 가격은 5배나 높은데 양은 3분의 1밖에 안 된다”고요. 아마도 아내는 제 입장을 생각해 ‘5배나 높은 가격’ 대신 ‘양은 3분의 1밖에 안 된다’는 말을 강조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겐 그 사실이 충격 이상이었어요. ‘내 새끼한테 이거 하나 못 사주는구나’…가슴이 아팠죠.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습니다. 아내와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전 그날부터 변했습니다. 당시 SK 1루 경쟁자가 김기태, 강혁 선배 같은 쟁쟁한 분들이라, 제가 주전 1루수가 되는 건 꿈같은 일이었어요. 하지만, 캠프에서 전 이전의 이호준이 아니었습니다. 포지션 경쟁 선배들이 10번 스윙하면 전 20번 스윙했어요. 선배들이 6시간 훈련하면 전 10시간 훈련했습니다. 내 새끼한테 더는 싸구려 분유를 먹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하루하루 운동하니 코칭스태프에서도 절 좋게 보더군요. 그리고 그때부터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4년 연속 20홈런 이상을 치면서 전 한 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네, 순간의 각성이 지금의 이호준을 만든 겁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베테랑 선수로 산다는 것
엠스플뉴스-이호준2.jpg 이호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그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이유다(사진=알렉스 김)
2006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면서 잠시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때 어떤 팬이 제게 그러더군요. “이호준 선수, 프로야구 선수로 20년만 뛰어주세요”라고요. 그분한텐 죄송한 말입니다만, 그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생각했어요. 선배들 대부분이 마흔 이전에 은퇴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가뜩이나 당시만 해도 재활시스템이 지금처럼 좋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나이 들어 부상 당하면 그게 곧 은퇴를 의미하던 때였죠.

2012년이야말로 최대 고비였습니다. 현역 지속과 은퇴 가운데 하나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즌이었어요. 만약 그해마저 부진하다면 전 유니폼을 벗어야만 했습니다. 실제로 지인들한테 “이번 시즌 부진하면 은퇴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반대로 잘하면 2번째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죠. 다행히 많은 분이 제게 용기를 준 덕분에 2012시즌을 슬기롭게 넘겼어요. 그리고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NC와 2번째 FA 계약을 맺으며 창원으로 떠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NC 유니폼을 입은 게 제 야구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NC는 제가 하고 싶은 야구를 할 수 있게 허락해준 팀입니다. 여기 와서 예전부터 치고 싶던 타격폼을 실전에 응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4타석 모두 다른 타격폼으로 스윙한 적도 있어요. 잘 맞지 않으면 뭐가 잘못됐는지 이유를 찾고, 잘 맞으면 성취감을 느꼈죠.

젊었을 때나 다른 팀에 있었다면 “뭐하는 거야” 같은 면박을 당하며 2군으로 내려가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NC에선 달랐어요. 코칭스태프가절 존중해주셨습니다. 그래선지 하루하루 즐겁게 ‘저만의 야구’를 실천할 수 있었어요.

물론 제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세수할 때 거울을 보면 아직 삼십 대 초반으로 보입니다만(전적으로 제 느낌입니다^^), 저는 우리 나이로 이제 41살입니다.

‘막’ 프로에 들어온 고졸 선수들에게 “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까 47, 48살이라고 하더군요.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편으론 저 자신에게 ‘그동안 수고했어’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전히 선수로 뛴다는 걸 감사해 할 나이가 된 겁니다.

솔직히 현역 연장에 대한 부담은 없습니다. NC 유니폼을 입을 때부터 ‘야구가 잘 되면 계속 현역으로 뛰고, 안 되면 깨끗하게 은퇴하자’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저도 누군가를 밀쳐내고 이 자리를 차지했을 겁니다. 네, 영원한 내 자리는 없는 것이겠죠.NC는 팀이나 감독님이나 선수 의사를 존중해주는 팀이라, 제가 강제 은퇴 당할 일은 없을 듯합니다. 그전에 ‘안 되겠다’ 싶으면 제 발로 나가겠죠.

나이와 은퇴 이야기가 나오니까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베테랑으로 뛴다는 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입니다. 30대 후반부터 줄곧 들어온 질문인데요. 답은 간단합니다.

힘듭니다. 우리 베테랑은 월등하게 잘해야 합니다. 한번 슬럼프에 빠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슬럼프에 빠졌다고 누가 기다려 주지도, 손을 내밀어 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린 더 노력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야구를 연구하고, 나만의 야구를 만들려 애써야 합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땐 힘 하나만 믿고 스윙했습니다. 지금은 경기 전에 상대 투수를 면밀히 분석하고, 타석에 서기 전 이미 머릿속으로 승부를 예상합니다. 그렇게 준비해야 막상 타석에 섰을 때 허둥대지 않아요. ‘만약 이런 준비를 젊었을 때부터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를 간혹 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제 시계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베테랑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벤치 신세가 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왜 감독이 나한테만 기회를 안 주지’하는 겁니다. 한번 생긴 불만은 가라앉을 줄 모릅니다. 저도 그런 불만을 품은 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건 핑계였습니다. 어차피 프로는 실력으로 승부하는 곳이죠.실력이 떨어지는데도 베테랑이 무리하게 주전 욕심을 낼 때 자칫 팀 워크가 깨질 수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가만 있으면 바보가 되는 것 같고. 계속 후보 신세가 되면 벤치나 라커룸에 있는 게 점점 불편해지죠. 후배들 눈치도 보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벙어리 선배’가 돼 있는 자신을 발견하죠. 그때의 감정이란…휴우-.

그렇다고 후배들에게 억지로 모범을 보이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하던 대로 하는 게 가장 좋다고 봐요. 그저 한결같이 경기에 집중하고, 마음에 우러나오는 응원을 후배들에게 보낸다면, 전 그걸 후배들이 가장 먼저 안다고 봅니다.
빠른 공에 배트가 밀리면 그때가 은퇴 시점이다.’

야구계에서 자주 하는 말입니다. 젊은 투수들은 베테랑 타자들을 상대로 빠른 공을 던지게 마련입니다. 배트가 밀릴 것으로 판단해서죠. 저한테도 많은 투수가 빠른 공을 던집니다. 여전히 빠른 공에 강점을 나타내고 있지만, 저 역시 가끔 빠른 공에 배트가 밀리곤 합니다. 머리에선 ‘쳐야지’하는데 실제론 한 템포 늦게 배트가 나올 때도 있어요. 가운데로 몰린 빠른 공 실투를 놓치면 머리가 멍해지죠. 그러면 다음 날 어김없이 특타를 자청합니다. 비디오를 찾아보면서 제 스윙을 점검하기도 하죠.

많은 분이 “그럼 타격 포인트를 좀 더 앞에다 두고 치지 그래?”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저 같은 베테랑이 타격 포인트를 기존보다 앞에 두긴 어렵습니다. 트로트 가수가 갑자기 래퍼로 변신할 수 없는 것처럼요. 어떻게든 내 타격 포인트를 지켜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슬프지만, 전 여러분 곁을 떠나야 합니다.

엎어놓은 모래시계의 모래가 거의 바닥을 향해 떨어진 것처럼 제게도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아내한테 농담조로 “나 언제 은퇴할까” 물으면 아내가 그럽니다. “2년만 더 뛰어”라고요.^^ 아내의 말이 농담인 걸 저도 잘 압니다.

늘 아내한텐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동안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1번은 야구였습니다. 가족이 2번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전 ‘내 일에서 최선을 다해야 우리 가족이 풍족하게 살고, 가족이 편해진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제가 야구를 못하면 밖에 나갔을 때 우리 가족이 손가락질받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이상한 소릴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제 욕심이었을지 모릅니다. 제겐 세 아이가 있습니다. 큰애가 중학교 2학년, 둘째가 초교 6학년이죠. 제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쪽같은 녀석들입니다. 그러나 전 우리 아이들이 크는 걸 제대로 지켜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이들 커오는 과정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다시는 오지 않을 우리 아이들의 성장기를 전 아내를 통해 들었을 뿐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은퇴하면 아내와 아이들이 절 위해 희생한 시간만큼 저도 아내와 아이를 위해 희생할 생각입니다. 그땐 무슨 일이 있어도 ‘아빠, 남편 이호준’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 겁니다.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제 마지막 꿈은 NC에 챔피언 트로피를 안기는 일입니다. 그게 부족한 절 받아준 NC와 NC 팬들께 제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보답이라 생각합니다.

전 오늘도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비록 그라운드에서 뛰지 못하더라도 제 동료들이 멋진 플레이를 펼치면 그날이 제겐 ‘가장 완벽한 하루’입니다. 아니 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하루일지 모르겠네요.

내일의 ‘완벽한 하루’를 위해. 전 오늘도 야구장을 향해 차를 몹니다.

스페셜 에디터 : NC 다이노스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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